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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이 말하는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주술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지배층은 집단 무의식을 조종하기를 바란다(서브리미널 효과의 사용, 미디어의 예언 프로그래밍 사용, 미디어는 메세지이다).

http://kidokilbo.com/news/view.php?wr_id=46&id=social

한국기독일보 | 청소년문화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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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미디어의 이해 (Understanding Media) : 인간의 확장, 미디어는 메시지다. 마셜 맥루언.

미디어의 이해 작가 마셜 맥루언 출판 민음사 발매 2002.06.30. 평점 < Understanding Med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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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oogle.com/url?sa=t&source=web&rct=j&opi=89978449&url=https://www.reuters.com/article/fact-check/the-simpsons-episodes-are-not-evidence-of-predictive-programing-idUSL1N2PN1VW/&ved=2ahUKEwiNoork5aSLAxX-1TQHHUevAbwQFnoECBcQAQ&usg=AOvVaw0416Bim9wxDSlHytvWanx4

https://www.google.com/url?opi=89978449&rct=j&sa=t&source=web&url=https%3A%2F%2Fwww.reuters.com%2Farticle%2Ffact-check%2Fthe-simpsons-episodes-are-not-evidence-of-predictive-programing-idUSL1N2PN1VW%2F&usg=AOvVaw0416Bim9wxDSlHytvWanx4&ved=2ahUKEwiNoork5aSLAxX-1TQHHUevAbwQFnoECBcQ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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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층은 사람들의 순수한 사념을 이끌어 다수의 마음이 공통으로 바라는 세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하는 마법이나 주술의 원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전의 성인인 예수 노자 부처들은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모두 기적을 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갑작스럽게 pc진영이 흥한 것도 그들이 그것을 믿기 때문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영적 전쟁 중이라는 것이다.

그럼 기적이 무엇인가 하면, 기적은 자신부터(때로는 타인까지) 영적으로 바로 잡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종교적, 수행적 기적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사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의 기적을 바란다는 것이다.

통상적 사전적 기적이 아닐수도 있겠다.

또한 감정은 힘이다.

감정을 사용하면 무엇인가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감정은 고대 신이라 보기도 하는 듯 하였다.

감정으로 일상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으로 보기 때문에 일부 영성가들은 감정을 털어내기(감정체 정화라고 한다)를 하는 것이다.(안전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기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묵은 감정은 토해내야 맞다.

누군가는 어린시절부터의 감정을 타고나는 데, 이것은 가족의 것이거나 태어나기 이전의 것이다.

내 오래된 데이터 기준으로 기존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계에서 감정을 억압시키는 시도가 있었다.

이것은 문제가 된다.

감정은 누적되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감정은 에고를 투사시킨다(시뮬레이션 우주)

그것은 좋기도 하지만 나쁘기도 하다.

기도를 하던지 고해성사를 하던지하여 털어내야 한다.

방도 중의 하나는 표현하는 것이다.

옛 한국 사람들끼리의 방식으로는 응어리를 털어내고 투닥거리고 다시 화합하였다.

이것이 옳은 정반합의 좋은 예시였다.

요즈음에는 그 방도를 모두 잊어버린 것이지,
한국에는 이미 정반합의 풍조가 있었다.

그래서 가져온 것은 원효대사의 화쟁론이다.

https://www.2000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5098

[설봉칼럼] 원효의 화쟁론(和諍論)│은종원 인제당 한의원 원장

원효의 화쟁론(和諍論)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은 어느 날 선덕여왕 포스의 문화심리학자가 뜬금없이 내게 말을 던진다. 그대가 가장 좋아하는 글자 하나를 한번 써보라고 종이와 펜을 불쑥 내민

www.2000news.com


여기서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和)는 화해·화합·조화를 말하고 쟁(諍)은 자기 스스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말을 의미한다. 원효가 살던 신라시대도 진골 성골의 계급사회로 그 아래 6두품이던 원효 또한 소외된 설움을 많이 겪었으리라.

그의 저서 <대승기신론 소>에서 ‘우리 본래의 마음은 一心 한마음인데, 고요한 바다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 파도와 바닷물이 따로 둘이 아닌 것처럼, 중생의 一心에도 깨달음의 경지인 진여심(眞如心)과 어리석은 무명과 집착에 의한 생멸심(生滅心)이 서로 분열되고는 있으나 이러한 진여심과 생멸심이 따로 둘이 아닌 一心 한마음’이라고 설파해 화쟁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의 화쟁은 정반합의 원리에서 정(正)에 화(和)를 두고 반(反)에 쟁(諍)을 두어 합(合)으로 타협하는 게 아니라 정(正)과 반(反)이 대립할 때 오히려 근원을 꿰뚫어 이 둘이 불이(不二)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쟁(諍)도 결국에는 화(和)로 동화시켜 나가는 ‘불이의 화쟁론’인 것이다
.

여기서 원효의 화쟁론은 인간세상의 화와 쟁의 양면성이 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찌 바다에 파도가 없을 수 있겠는가? 파도가 없는 바다가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다. 우리 중생의 마음에도 늘 번뇌와 갈등과 대립이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얘기다. 심리학에서도 무의식적 본능에 두 가지가 있으니,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에로스의 본능과 자신을 해체하고 파괴하려는 타나토스의 본능이 늘 꿈틀거린다고 한다.

(기울임 표시는 발췌로 쓰고 있다. 내가 그렇게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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